【에이블뉴스 이정주 칼럼니스트】전쟁은 문명을 바꾼다.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국경이 다시 그려지고,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뒤집힌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의 시간, 인간은 다시 인간을 돌보는 새로운 창발적 도구를 만들어낸다.

산업혁명과 1·2차세계대전은 엄청난 수의 장애를 가진 사람(PWD)을 존재케 했지만, 동시에 인류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도를 찾아냈다. 그중 백미는 장애인 고용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은, 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객체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할 수 없는 몸’,  수용 시설의 탄생

인류 역사 가운데 장애인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고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때로는 신의 메신저로, 때로는 공동체의 짐으로 여겨졌지만, 적어도 공동체 안에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교회와 마을이 그들을 돌봤다. 그 돌봄은 완전하지 않았고, 미신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장애인에게는 그 공동체 안에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를 빼앗은 것은 산업혁명과 두 번의 세계대전이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인간의 몸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효율적인 몸을 원했다. 정해진 속도로 움직이고, 반복 동작을 견디며, 정해진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 시기를 분석하면서 사회가 어떻게 신체를 규율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가 말한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은 학교, 병원, 군대, 공장이라는 제도를 통해 정상적인 몸비정상적인 몸을 가르고, 비정상으로 분류된 이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이 현상을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에서 산업 자본주의가 노동을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y)’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몸과 시간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었을 때, ‘생산성이 낮은 몸은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장애인은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불량품으로 취급되었다.

그 결과 19세기부터 유럽 전역에 수용시설이 세워진다. 명목은 보호였지만, 실상은 격리였다. 장애인은 공장이 보이지 않는 곳,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푸코가 '대감금(Great Confinement)'이라고 불렀던 이 흐름 속에서, 장애인은 공동체 밖으로 쫓겨났다. 산업혁명은 장애를 차별해야 할 이유를 만들었고, 그 논리는 과학적인 언어로 포장되었다.

  이어지는 두차례 세계대전도 전에 없이 많은 장애인을 탄생시킨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인류가 경험한 산업화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기관총, 독가스, 포격전은 전장을 살상기계로 만들었다. 4년간의 전쟁이 끝났을 때 전사자는 약 1,700만 명, 부상자는 2,100만 명에 달했다. 그중 수백만 명은 사지를 잃거나, 시력을 잃거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은 그 규모를 더욱 압도했다. 전사자 약 7,000만 명, 수천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는 전쟁으로 장애를 얻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넘쳐났다. 어느 사회도, 어느 국가도 이들을 수용시설에 격리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 수가 너무 많았고, 그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전쟁의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귀환한 상이군인들을 영웅으로 대접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인도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필요였다. 국가의 부름에 응했던 이들에게, 국가는 보답해야 했다. 미국의 경우 1944군인재취업권법(Servicemen's Readjustment Act)’, 흔히 ‘G.I. Bill’이라 불리는 법이 제정되었다. 참전용사들에게 대학 교육, 주택 구입, 직업훈련을 국가가 지원했다. 상이군인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도 확장되었다.

이것이 현대 보훈(veterans’ benefits) 체계의 기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들이 장애인도 일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상이군인의 직업재활은 단순한 복지 제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으로 몸이 달라진 사람도 사회의 생산적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처음으로, 천천히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패전국의 역설: 장애인 의무고용의 탄생

더 놀라운 역설은 패전국에서 일어났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에서 졌고, 수백만 명의 전쟁 부상자를 안고 있었다. 전쟁 희생자를 대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었다. 국가 재건의 동력이 필요했고, 동시에 이 패잔병들을 사회 속으로 통합해야 했다.

독일은 전후 1953중증장애인법(Schwerbeschädigtengesetz)’을 통해 기업에 장애인 고용 의무를 법으로 부과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는 전체 직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장애인 고용정책의 근간이 되는 장애인 의무고용제(quota system)’의 원형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부상 당한 패전병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그들을 환대하거나 기릴 수는 없었다. 대신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들의 작은 일자리를 하나둘 만들어 주었다. 이를 이어받아 일본은 신체장해자고용촉진법(1960) 제정하였다.

이러한 장애인고용 제도의 탄생 배경에는 복잡한 동기가 혼재되어 있었다. 첫째는 전쟁 부상자의 사회 복귀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정치적 의무감이었다. 둘째는 전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약한 노동력이라도 생산에 기여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였다.

셋째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경험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형성된 인권 담론이었다. “장애인도 일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처음에는 전쟁 부상자를 위한 실용적 논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쯤되면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double movement)’개념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가 사회를 지배하고 인간의 상품화를 조장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사회적 회복 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시장의 논리를 밀어붙이면, 그에 상응하는 공동체의 논리가 반격을 취한다. 산업혁명은 장애인을 생산성 없는 몸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밀어냈다.

그것이 시장의 논리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수백만의 전쟁 장애인 앞에서, 사회는 시장과 맞서 싸웠다. 장애인 의무고용제, 재활 프로그램, 보훈 서비스, 그리고 국제 인권 규범의 발전, 이 모든 것이 폴라니가 말한 이중운동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권리의 언어로 확장된 장애인 고용

그리고 이 반격은 법으로 굳어졌다. 1975년 유엔 장애인권리선언,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 그리고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탄생했다. CRPD 273)는 장애인의 노동권과 고용권을 명시적으로 선언한다.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라고 정의하는데 이르렀다.

역사를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 우생학의 논리로 장애인을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규정했던 시대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국제사회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편적 인권으로 선언했다. 나치 독일이 T4라는 장애인 학살의 방법론을 개발하던 그 시대로부터, 패전국 독일이 세계 최초의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만드는 것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역사의 패턴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콩고, 소말리아, 르완다, 시에라리온그 이름들 뒤에는 총성과 함께 장애를 얻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드론 공격의 특성상 사망보다 부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장애인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사회도 그 물음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인류는 지금까지처럼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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