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은행에서 정당한 편의제공 없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카드 발급을 거부당한 중증장애인이 12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제기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한 은행에서 정당한 편의제공 없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카드 발급을 거부당한 중증장애인이 12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제기했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뇌병변 중증장애인 최 모 씨는 지난 9월 평생교육 바우처 카드 발급을 위해 A은행 지점을 방문했으나, 담당 직원들은 '언어장애가 있어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카드 발급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최 씨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편의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으며, 활동지원사가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소통하자고 대안을 제시했으나 이 또한 거부했다. 결국 최 씨는 바우처 카드를 받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이후 최 씨는 장추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 은행 측에 두 차례 공문을 통해 카드 발급 거부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지만, 은행 측은 '응대한 절차가 규정에 의한 것이며, 내부적으로 응대 관련 매뉴얼이 있고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최 씨 등은 이 같은 은행 측의 태도를 두고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없었고,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B은행 직원과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장 등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최 씨는 인권위에 금융상품,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 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에 대한 배상, 장애인 응대 매뉴얼 제작, 장애인 인권교육 등을 권고할 것을 요청했다.
최 씨는 “의사 소통이 안 된다며 생전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겪어서 큰 모멸감을 겪었고, 책임을 면피하려는 은행의 태도에도 매우 화가 났다”라며 “나와 같은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위가 제대로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는 "장애인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이 비장애인 중심 기준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배제 사유로 두는,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장애인 의사소통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 차별이 같은 차별을 만들어낸다. 이번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수년째 반복된 구조적 차별의 또다른 사례로 문제삼지 않는 한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면서 "인권위는 장애인이 금융서비스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은행의 공식사과 함께 응대 매뉴얼 제작, 인권교육 등을 권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추련 박김영희 상임대표도 "은행에서는 장애인이 이용당하거나 금융에 대한 문제를 잘 인식못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본적인 의심이나 불신을 갖고 있다. 뿌리깊은 장애인 차별적 인식으로 금융의 고객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재발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금융고객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묵과하지 않고 우리의 권리 찾기 위해서 진정을 제기한다. 금융에 있어서 권리 보장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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