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정현석 칼럼니스트】최대 열흘을 쉴 수 있던 황금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난 9월의 어느 주말, 조금은 부담스러운 약속이 잡혔다. 만나야 할 사람은 지인과 그 시어머니 되는 분이었다. 오랜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을 보며 고민을 털어놓았고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도 도련님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분이 있는데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보고 싶다. 내가 00이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며 결혼식 때 볼 것을 제안했지만, 다른 날도 아닌 결혼식 당일에 어머니의 관심이 결혼 당사자가 아닌 장애를 가진 동생에게 쏠리는 것을 본다면, 결혼의 당사자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 같아 고민 끝에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 후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던 가족이 지인에게 “지난번에 말한 그 사람을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해서 내 입장에서는 마냥 편할 수 없는 약속이 잡히게 된 것이었다.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사전에 전달받은 장소로 나가니, 지인과 시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자 약간은 놀라는 반응이었지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주문했던 음료가 나왔다, 그리고 독립의 기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주택의 형태 등을 물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날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반 모금씩 넘기는 모습에서 나름대로의 고민이 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끝나고 다음에 던진 말은 이미 예상했지만 기분이 좋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이건 안 물어본 것 같은데, 그 몸으로 어떻게 나올 생각을 했어요? 몸 상태는 우리 애가 더 낫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인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라고 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으리라.
나 역시 이 부분에서는 표정 관리가 필수였다. 우선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의도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초면에 하는 질문으로는 선을 넘은 것은 분명했지만 처음 보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려웠다. 우선 내 감정부터 가라앉히고 볼 일이었다. “머리는 차갑게” 를 마음 속으로 외치기를 몇 번, 질문을 받았으니 답은 해야 했다.
“방금 하신 말씀을 저희 부모님이 옆에서 들으셨으면 상당히 속상하셨겠네요. 저도 제가 나가서 사는 게 불가능할 줄 알았지만, 나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장애 상태가 심하다고 해서 무조건 독립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구요.”
“우리 애도 못 나갔는데 본인이 정말 나가서 사는 게 되요? 요양보호사나 그런 사람이 붙어있는 건 아니구요? 내가 우리 애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많이 안 했지만 다들 힘들다고 하던데 혼자 나가서 사는 건 진짜 괜찮은 거에요?”
70이 넘은 분들 중 주변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없다면 독립이나 복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알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만약 주변에 복지관 혹은 주민센터와 연결되었거나 장애인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독립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지인의 시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아들의 독립을 장애 자체를 보지 않고 독립에 대한 본인의 의지부터 확인하고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기를, 부모가 떠나면 한 배에서 난 자녀들도 남남이 된다는 말처럼 부모가 세상에 있을 때 독립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에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시설 이외에 또 다른 답을 찾았다면 그걸로 만남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모임이 있고 얼마 뒤 지인으로부터 약간의 현금과 더치커피를 받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현금도 돌려주지 못했지만, “내가 00 이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던 시어머니의 마음이 더치커피처럼 어둡지 않고 화이트 초콜릿처럼 환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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