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상은 장애미술인 행사에서 많이 만나지만 수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바로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지켜보는 멋진 신사이다. 장애인미술 정책에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항상 편안한 모습으로 장애인미술계를 35년 동안 지킨 중견 화가이다.
조용한 학생

왼쪽_동아일보 ‘동아어린이문예상’ 그림 부문 우수상, 오른쪽_동아어린이문예상 상패. ⓒ이명상
이명상은 돌 무렵 고열로 몹시 앓고 난 후 청력을 잃었다. 그는 의사 표시를 그림으로 하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참여한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동아어린이문예상에 나가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명상은 <우리 동네>를 그렸는데 어머니가 봐도 동네 풍경을 똑같이 그려서 놀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미술 재능을 발견하고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미술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서예학원을 보냈다. 묵을 갈아서 글씨를 쓰는 서예를 처음 접했던 명상은 성장하여 미술학원에 가서도 동양화, 그중에서도 한국화를 선택하였다.
명상은 초등학교 입학을 구화학교로 하였다. 수어가 아닌 입 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구화를 어머니께서 더 원하셨다. 어머니는 명상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반학교로 전학을 했다.
학창 시절 명상은 조용한 모범생으로 잘 지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강의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친구들이 빌려주는 필기 노트로 공부를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은 대학입시 준비로 한창 바빴지만 명상은 대학을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이 명상의 재능이 뛰어나다며 미술대학 진학을 권하셨다.
명상이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1991년은 장애 학생에 대한 장애인특례입학제도가 실시되기 전이라서 명상의 입시원서를 받아 주는 대학을 찾아 청주까지 내려가야 했다. 어머니는 명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나 아버지는 남자가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반대를 하셨지만 막상 아들이 대학에 합격을 하니 청주대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주셨다.
청주대학교 회화과 재학 시절도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수화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필담으로 친구들과 소통하며 역시 친구 노트에 의존하여 무리 없이 공부를 할수 있었다. 어머니는 혼자서 생활하는 아들을 위해 틈틈이 청주로 내려왔고, 주말과 방학 때는 명상이 서울로 올라와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명상은 대학 시절 미술전시회나 미술계 모임에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필담 데이트로 이룬 가정

가족사진. ⓒ이명상
이명상은 1972년에 태어나 한 살 때 청력을 잃었기에 2007년 본격적으로 실시된 청각장애 인에게 소리를 찾아 주는 달팽이관 수술을 받기에는 늦은 나이였으나 그래도 기적을 기대하며 수술적합 검사를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무리를 해서 수술을 한다 해도 성인들은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하여 포기하였다.
지금은 보청기를 착용하지만 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함이지 말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명상이 말을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그가 조용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명상이 어머니와 대화를 할 때는 필담을 하지 않았다. 단어 정도는 말로 표현이 되지만 명상은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마도 어머니는 명상이 외마디 소리로 외치는 것이 비장애인 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 듯하다.
명상은 2004년에 결혼을 했다. 부인의 직장 동료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아주 멋진 화가가 있어서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하면서 ‘근데 말을 못하셔!’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화를 냈을 텐데 그녀는 ‘그럼 어떻게 대화를 해요?’라고 물었고, 필담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인이던 부인은 이명상을 만나기 전부터 뭔가 끌리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자연스럽게 필담을 나누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당시 이명상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사랑마을에서 장애원생들을 대상으로 10년 넘게 미술지도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데이트를 하는 날도 한사랑마을 학생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장애아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가르치는 모습에서 이명상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KBS 9시 뉴스에 이명상의 봉사 활동이 소개될 정도로 그 당시 청각장애 화가의 장애아 그림 지도 봉사 활동이 화제가 되었다.
8개월 동안 만나면서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오빠가 부모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오빠는 동생의 결정을 믿었다. 사실 이 결혼은 어머니가 아들 장가보내기 위해 지인에게 부탁하여 이루어진 혼담이라서 어머니는 결혼을 서두르셨다.
딸 둘을 낳고 기르는 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2012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은 살던 집을 아들네에게 물려주고 당신은 작은 아파트로 독립하셨다. 일반 주택이라서 마당 한켠에 컨테이너로 개인 작업실을 꾸리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나이가 들자 춥고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해서 현재는 그림 창고로 사용하고 집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큰딸은 20세이고 작은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다 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지원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부인이 여전히 직장에 다녀야 한다. 가장으로서 이명상 작가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부인도 수어를 배웠지만 수어통역사만큼의 수준은 아니라서 중요한 미팅을 할 때는 종이에 적어 가면서 필담과 함께 통역자 역할을 한다. 근무가 없는 날로 미팅을 잡아야 해서 남편의 입 노릇을 마음껏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처럼 바우처로 수어통역사의 서비스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청각장애로 소통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청각장애인처럼 멋진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해’라는 고백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사랑, 당신’ 수어로 이렇게 표현이 된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내용 전달에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
보통 부부들은 말을 실컷 해 놓고 말이 안 통한다고 서로 화를 내지만 이 작가의 부인은 소통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있다.
대학 시절 이명상은 청각장애 화가 동호회인 청미회에 나가서 운보 김기창 화백을 뵈었는데 청각장애 화가의 우상인 분이어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볼 정도로 부끄러 움이 많은 성격이다.
아직도 이명상 작가는 부끄러움이 많아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긴장을 해 식은땀을 흘린다며 남편의 순수함을 은근히 자랑하였다.
이명상의 작품 활동

(시계방향으로) 스케치 여행 중, 제19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시상식-미술 부문 문체부 장관상 수상, 제14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 . ⓒ이명상
1992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 입선하여 장애인미술계와 인연을 맺었고, 1995년 한국 장애인미술협회 창립전에 참여하면서 장애미술인들과 교류하였다. 그러다 2004년 장애인미 술계에서 가장 큰 상인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활동을 하면서 한국화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원 수묵화 반에 2001년 입학하여 실경산수화를 중심으로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실경산수(實景山水)란 실제 풍경의 산수가 지닌 정취를 구현하는 것으로 작가의 원근으로 중요한 실경의 부분을 확대하여 그리는 화풍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실경산수화를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자연의 모습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명상 작가는 혼자서 스케치 여행을 다닌다. 인적이 없는 산 위에 올라가서 또는 강가에 앉아서 스케치북을 펴놓고 눈에 꽂힌 장면을 스케치할 때의 명상은 집중력이 대단하다.
그는 도시 어느 곳을 다녀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스케치 능력을 갖고 있다. 작품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한다. 화방에 가서 그림 재료를 사고, 표구와 액자를 제작하고, 전시회 준비를 할 때는 혼자서 너무나 잘해내어 어떤 때는 부인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명상 작품에는 정자와 소나무가 등장한다. 수묵으로만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지만 결혼 후 부인이 채색을 해 보라는 조언에 따라 채색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명상 작가는 특유의 부드러운 먹빛 표현이 큰 장점이다. 섬세한 선은 익숙한 일상과 만나 현대 실경산수의 세련미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무엇보다 풍경의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좋아하는 것을 강조하는 작품은 작가의 사유가 잘 드러나 깊이를 더한다.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전업화가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개인전을 4회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전시장에 들어와서 작품을 구입한 경우는 지금까지 딱 두 차례뿐이다. 대부분 지인들이 와서 격려 차원에서 작품을 구매해 준다. 따라서 장애미술인은 작품 활동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장애미술인을 고용하는 사업체가 있지만 월급이 용돈 수준이라서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 가장 큰 수입은 어쩌다 받는 상금인데 지난해 말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 대상 미술 부문 장관상을 받았다.
이명상 작가는 2024년 8월 ‘사랑의 열매’ 표지 작가로 선정되어 작품 ‘행주산성 세월을 거스르다’가 표지로 사용되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서울 근교의 행주산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실경산수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이명상 작가의 설명이다.
“초여름 어느 날,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행주산성이 눈에 들어와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숱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역경을 극복하고 지금의 발전을 이룬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에요. 완성되어 가는 작품을 보면 나도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함을 느낍니다. ‘사랑의열매’ 표지 작가처럼 이벤트가 있으면 응원을 받는 것 같아 큰 힘이 되지요.
앞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준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화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계속 미술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림(怡林) 이명상
1995 청주대학교 회화학과 졸업
2003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원 수묵화반 수료
2024 제19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미술 부문 우수상(문체부 장관상)
2024 제22회 겸재미술대전 입선, 제6회 입선, 제5회 입선, 제4회 입선
2024 제28회 행주미술대전 특별상, 제27회 특선, 제26회 특별상, 제17회 특선
2023 제23회 대한민국안견미술대전 입선, 제22회 입선, 제21회 특선
2023 제36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동양화 대상
2022 제17회 대한민국소치미술대전 대상
2022 제4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 부문 입선, 2004년 제23회 입선
2014 제14회 한국화구상회 미술상
2004 제14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한국화 대상
2001 제2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입선
경인미술대전 서예문인화 초대작가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초대작가
눈부신 복지세상 그림그리기대회 심사위원(제43회 장애인의 날)
한국미술협회,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한국화구상회, 강서미술협회, 선유회, 청미회, 한국장애인서예협회, 한국장애인전업미술가협회 회원 사회적협동조합 인권과장애예술 협력작가, 대덕전자 소속 아티스트
개인전
2022 묵의 시선(갤러리 라메르 제2전시실)
2018 자연, 그리고 시선이 머무는 곳(KBS시청자갤러리)
2007 하나로갤러리 2001 묵의 예술, 또 침묵(조형갤러리)
아트페어 11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 광주에이블아트페어, 아트노마드아트페어 등
단체전
2024 서울시복지재단 ‘동행과 소통전’(SWF갤러리)
2024 프로들의 아름다운 동행전(AN갤러리)
2023 선유도 이야기 특별전 ‘바람소리’(선유도공원 이야기관)
2023 사랑의열매 창립 25주년기념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사랑의열매 별관)
2022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전
2021 따뜻한 동행전(수원법원종합청사 1층 로비)
2020 제30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초대작가전(국회 의원회관)
2019 제12회 관악깃발전(관악산공원 입구 숲길)
2010 한국청각장애작가작품전 ‘에덴의 풍경전’(이형아트센터)
2007 청년작가초대전-디지로그 시대의 오감 찾기(서울역사)
2006 1+1=人 함께 그리는 미래(운보미술관)
2005 소리 없는 메아리전(운보미술관)
1996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창립전(세종문화회관)
이명상 대표작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조용한 묵향으로 빛나는 이명상 화백 대표작. ©이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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