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하굣길, 내 손을 잡은 아들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엄마 우리 반 내 짝꿍이랑 옆에 있던 애가 ‘얼레리 꼴레리 양 예준은 바보 장애인이라 도움반 간데요~ 도움 반 간데요~’ 라고 했어요. 엄마, 나 장애인이야?”

“뭐? 누구야! 누가 그런 소릴 해?”

“엄마, 나 국어 받아쓰기 80점 받았어요. 근데….”

“어 그래? 잘했고, 응 알았어. 일단 예준이 앉아서 그림 그리고 있을래?”

아들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온종일 기다리며 궁금했던 아들의 받아쓰기 점수를 듣고도 영혼 없는 칭찬이 입에 매달렸다. 그저 우리 부부가 완전통합 수업 시 생길지 모를 예상 모의고사 문제가 적중해 현실 됐구나 싶어, 심장이 내려앉을 뿐이었다. 그 순간 오로지 담임 선생님이 퇴근하시기 전, 이 문제를 빨리 의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번호를 찾는 내 손은 이미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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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조용히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리던 아들은 마치 학교에서의 슬픔을 스스로 위로하는 듯 했다. ©장윤경
습작품이 완성되면 항상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초등 2학년 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습작품이 완성되면 항상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초등 2학년 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그랬다. 나는 항상 예준이가 학급 친구들 사이에 부족하지만 조금씩 스며들길 바랐다. 그러나 분명 자폐 장애의 특성은 쉽게 감춰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방과 후 수업만큼은 장애 친구들과 함께 도움 반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담임과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하고서야 “아니야, 예준아! 너희 반 네 짝꿍이랑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해? 우리 예준이 속상했겠네. 엄마가 그 애들 혼내 줘야겠어!”라는 말로 아들을 위로하듯 멘탈을 붙잡았지만, 초등 2학년 아들 질문에 시선을 회피하듯 서둘러 말하던 내 목소리는 비겁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준아, 그래 너 장애인 맞아.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중학교 수학 시간은 어렵다고 엄마한테 말했던 거 기억나? 그건 예준이가 친구들과 달리 생각하고 말하는 주머니가 조금 작게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런데 예준아, 네가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친구들보다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고 불편할 뿐이지 장애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너도 노력하면 친구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게 있어! 생각해봐? 엄마는 너처럼 색연필 그림, 잘 그리는 아이는 지금껏 못 봤어! 너는 그만큼 특별해! 그 누구도 너처럼 색연필을 멋지게 칠 할 수 없어. 친구들도 네 그림 보며 다들 놀라잖아 않그래?”라고.

처음엔 이렇게 말해주면서도 엄마라는 사람이 대 놓고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몹시 두렵고 때론 남편과 친정엄마와도 의견 충돌은 있었다.

어느 날, 내 아들을 비롯해 장애 친구들을 저만치 두고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유창한 말도 어울림도 어렵고, 학교 수업도 도무지 이해가 어려운데, 그때마다 친구들과 자신이 왜 다른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찾아오는 불안한 감정을 그저 상동 행동, 혹은 약물치료로 잠재우며 평생을 사는 것이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더 괴롭지 않을까? 싶었다.

냉정히 보면 인간 양예준의 삶이요, 내 삶이 아니다.

내가 엄마요,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발달 장애’라는 단어를 쉬쉬하고 금기어처럼 감추는 것만이 아들의 먼 미래를 생각했을 때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의 물음표를 수도 없이 나를 향해 던졌다.

“엄마, 나 장애인 안 하고 싶은데 내가 노력하니까 이제 괜찮아질 거야, 내가 마음 화가니까 나도 잘하는 거 있어요. 앞으로 목소리도 크게 하고 길게 똑바로 말할 거예요.”라고 아들은 답한다.

분명 내 설명에 예준이는 유창하게 대답하지 못할 뿐, 아들 내면의 ‘자아’는 분명, 다 듣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도 청소년 나이가 되었기에 나도 조심스레 이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인 내가 설명하면서도 마음이야 찢어질 듯 아프지만, 그 누구보다 발달 장애를 스스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 앞에 곧 다가올, 성인기 삶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도록 돕는 것이 하늘이 내게 주신 진짜 사명이 아닐까? 내 아들이 지금 고령, 혹은 시한부 인생을 앞둔 사람이 아니기에 아들도 자신의 삶이 비장애인과 조금은 다름을 서서히 알 권리도 분명 있다는 것을 나는 기도 중에 알게 됐다. 성인기가 되어서 뒤늦게 설명해 주기보다 사춘기인 지금이 자칫 위험할 수 있으나, 생각의 차이일 뿐 오히려 적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준아, 너는 비록 장애가 있지만, 너도 이 땅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꼭 안아준다.

그러나 내 주변 발달 장애아이 한 엄마는 내게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예준 언니, 예준이 더 상처받으면 어쩌려고 뭐하러 장애며 복지카드 얘길 아이한테 말해요? 그리고 저는 일반학원 등록할 때, 제 아이 장애 있다고 강사한테 솔직히 말해봐야, 오히려 선입견 가지고 볼 게 뻔해서 지금도 절대 말 안 해요.”라고.

그러나 나는 이제 이런 말에 반기를 든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달 장애’를 금기어로 숨겨왔고 드러내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달 장애’라는 용어부터가 낯설고, 어찌 보면 그들이 선입견을 품는 건 당연한 이치다. 나도 내 아들을 만나기 전엔 영화 혹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달 장애’라는 이름은 자랑의 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금기어는 더더욱 아니다. 틀린 것이 아니며 조금 다를 뿐이다. 이 다름의 특징을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부터 용기 내 세상 밖으로 드러내야만 발달 장애인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이 사회 속에 숨죽여 살지 않을 수 있고, 자신들의 꿈을 조금이라도 펼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발달 장애’라는 단어가 더는 생소하지 않은 사회가 되리라고 나는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나부터 솔직해지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조언을 내게 하는 장애 부모는 대부분 경증 장애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경증 장애 부모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만나온 몇몇 경계선 지능 장애 부모, 혹은 단순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오히려 자녀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그것을 외부에 감추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제일 안타까운 건 때론 중증 발달 장애아이와 자신의 경계선 장애아이는 마치 다른 부류의 아이인 양 어울리기를 꺼리며 행동할 때인 것 같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기에 섣부르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부모가 아이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반 학교라는 비장애 집단 속에 한 시간만 경계성 지능 혹은 ADHD 학생이 함께 있다면 주머니 속에 못처럼 아이의 개성과 특별함은 교사의 눈과 주변 학생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또 하나, 지금도 내 관점에서 유독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국가 복지혜택 또는 장애인 특별전형, 군 면제, 취업이라는 문턱 앞에서 부모들의 모습이다. 평소 우리 아이는 경계선 장애라 복지카드도 안 나온다며 발달 장애아이들을 안타깝게 보던 부모가 갑자기 자녀의 취업 혹은 군 문제를 앞두고 복지카드를 어떻게 던 받으려고 뒤늦게 애쓰는 모습이었다. 또는 자신의 아이는 특수교육 대상자이고 약물치료만 할 뿐이지 장애는 아님은 계속 강조하다가, 정작 국가 장애 복지혜택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아이가 장애 범주에는 해당한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는 등의 이중적 태도를 보일 때다.

나는 조심스레 말한다.

장애 부모들부터 자신의 자녀와 타인의 자녀, 장애 정도를 서로 저울질하지 말 것이며 장애에 있어 중증, 경증이라는 이름표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장애 부모들 자신에게 던져야 할 때다.

이제 우리 장애 부모들부터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부끄럽다, 금기어다! 라고 생각 말고 먼저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중증, 경증 모두 똑같은 발달 장애인 범주임을 인정하고 서로가 똘똘 뭉쳐야만 이 세상이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홀로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간다’라는 말처럼, 우리 발달 장애 부모들이 함께하나 되어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만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나비효과’요, 우리가 이 땅의 발달 장애인들에게 주고 갈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장애 부모’라는 이름표는 자신의 인생 계획에 없었을 것이기에 절대 쉽지 않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과거엔 다르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학교로 달려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야말로 헬리콥터 맘이 되어 잠시라도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하던 일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건 반사처럼 90도로 허리를 굽혀가면서 전화를 받는가 하면 “네 선생님, 혹시 예준이한테 무슨 일 있나요?”라며 나의 불안감을 담임에게 먼저 표현하거나, “감사하고, 죄송해요.”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해야 내 맘이 편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한 날은 잠시 멍하니 앉아 눈물을 훔치거나 늦은 저녁 괜스레 남편에게 푸념 섞인 말투로 의논을 하는 내가 참 싫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뭐가 그리도 늘 선생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걸까?

내 아이의 장애가 죄도 아니거늘, 왜 내 자존감은 이렇게 된 걸까? 장애아이를 키우다 보면 학교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보통 좋은 소식보다 사건, 사고로 걸려오는 전화라는 선입견은 대부분의 장애 부모들도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나도 멘탈이 강해진 것인지 매 학년 만나는 담임교사에게 할 말은 조금씩 당당히 하고 눈치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2학년 담임과 짝꿍 사건의 통화가 마무리된 다음 날, 담임의 지도 덕분에 아들을 놀린 짝꿍과 친구들로부터 결국 사과를 받았지만, 아들에게 도움 교실 트라우마라는 흉터도 남겨왔다. 그 날 이후로 예준이는 도움 교실 방과 후 수업에 가지 않겠다 선언을 했고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결국, 도움 반 방과 후 수업을 대신해 쌍둥이 형제들이 다니는 일반 태권도장을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 또한 같은 반 쌍둥이 엄마가 내 아들에 대한 선입견 없는 선한 마음 덕분이었다. 막상 장애가 있는 예준이가 일반학원 아이들과 어울림은 쉽지 않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도 예상한 바였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먼발치에서 쌍둥이 친구의 태권도 자세도 어설피 따라 하고 학원 차량에 친구들과 함께 하원도 하는가 하면, 태권도 도복에 묶인 하얀 띠를 매만지며 소속감을 맛본 듯한 예준이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가 흘러넘쳤다.

예준이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 덕분에 난생 처음 일반 태권도 학원에 도전하기로 우리부부는 결심했다. ©장윤경
예준이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 덕분에 난생 처음 일반 태권도 학원에 도전하기로 우리부부는 결심했다. ©장윤경

짝꿍의 놀림 사건은 결코 슬픔만 우리 가족에게 남기지 않았다.

예준이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제법 전달 가능하다는 것이 나와 담임 선생님께 증명되는 순간이었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도 치료실이 아닌 일반학원에 처음 도전도 할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 사건은 하늘의 계획이 담긴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추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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