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선 요청에 돌아온 답변, ‘수용’ 이제 현장의 변화를 기대한다. ©하석미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현장을 모니터링한 뒤 한국무장애관광연구센터 이름으로 여수시에 개선을 요청하는 민원을 접수했다.
그리고 9월 11일 답변을 받았다. 처리상태에는 파란 글씨로 ‘수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민원을 제기했다고 해서 내가 요청한 방법대로 모두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람회가 이미 운영 중인 만큼 시설 구조상 당장 손대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고, 안전이나 운영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답변을 보면서 ‘받아들였느냐, 받아들이지 않았느냐’만 보지는 않았다. 내가 더 궁금했던 것은 하나였다.
현장에서 확인된 불편을 어떻게 줄이겠다는 것인가?
답변을 하나씩 읽어보니 반가운 부분도 있었고, 여전히 아쉬움이 크게 남는 부분도 있었다. 장애인화장실, 도우미가 해결책이어야 할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장애인화장실에 대한 답변이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11개의 장애인화장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물내림 장치가 페달식이었다. 발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물을 내릴 수 없는 방식이다. 버튼식 물내림 장치가 있는 화장실도 있었지만 일부 설비는 흔들리는 등 점검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여수시는 박람회장 화장실이 이동식 임시화장실로 설치·운영되고 있어 물내림 장치 방식 자체를 즉시 전면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대신 버튼식 물내림 장치가 설치된 화장실을 포함해 전체 장애인화장실의 고정 상태와 작동 여부를 전수점검하고, 흔들림이나 고정 불량이 확인된 설비는 즉시 보수·재고정하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반가운 답변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책에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페달식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버튼식 등 이용이 쉬운 방식의 설비가 설치된 화장실 위치를 안내하고, 현장 도우미를 통한 이용지원 체계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질문이 생겼다.
화장실 물을 내리는 일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화장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일이다. 발로 페달을 밟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밖에 있는 도우미를 불러야 한다면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11개를 모두 당장 바꾸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렇다면 11개 가운데 몇 곳만이라도 발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버튼식 등 손으로 조작 가능한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그리고 그 화장실의 위치를 명확하게 안내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몇 곳만이라도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확보하는 것. 나는 그것이 ‘현장 도우미를 통한 이용지원’보다 먼저 검토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다.
더구나 화장실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가적인 편의시설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이다. 그래서 화장실 답변은 점검과 보수 계획에는 만족했지만, 페달식 물내림 장치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테이블, ‘안내’가 해결책일까
야외 테이블에 대한 답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는 관람객이 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수십 개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고정된 의자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 일행과 같은 테이블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여수시는 테이블과 파라솔이 기성품 형태로 제작·설치돼 있어 일부 좌석만 임의로 제거해 휠체어 진입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또 일부 테이블에서만 좌석을 제거하면 일반 관람객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용하다 안전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기존 테이블 구조 변경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다음 대책은 아쉬웠다. 휠체어 이용객이 비교적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테이블의 위치를 파악해 안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향후 시설 개선계획을 세울 때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테이블 확보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테이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과 그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내가 요청했던 것은 휠체어가 테이블 근처까지 갈 수 있는 자리를 알려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휠체어에서 내려 의자로 옮겨 앉기 어려운 사람도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먹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존 테이블의 의자를 제거하는 것이 안전상 어렵다면, 다른 형태의 테이블 몇 개를 추가로 놓는 방법은 없는지, 임시로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없는지 다른 대안을 한 번 더 찾아봤으면 했다.
‘향후 개선계획에 반영하겠다’는 답변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박람회장을 찾는 휠체어 사용자는 오늘 앉을 자리가 필요하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식당에는 대체 주문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몰랐다’는 것
반대로 식당 이용에 대한 답변에서는 내가 현장에서 알지 못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식당섬의 개별 음식점 부스에는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지만, 키오스크 이용이 어려운 관람객을 위해 별도의 통합 주문·결제대가 운영되고 있었고 그곳에서 식당섬 내 모든 음식점의 주문과 결제가 가능했다.
이것은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무조건 기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문 방법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현장을 다니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수시 역시 답변에서 통합 주문·결제대를 통한 대체 주문·결제 방법에 대한 현장 안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안내를 강화하고, 운영인력이 도움이 필요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 답변에는 공감한다.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개선은 아니다.
이미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놓았다면 필요한 사람이 그것을 알고 찾을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접근성이다.
통합 주문·결제대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현장 직원들도 정확하게 안내한다면 바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파쇄석 주차장, 다른 방법을 찾은 답변은 반가웠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대한 답변은 이번 답변 가운데 특히 반가웠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자체는 마련돼 있었지만, 차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일부 구간이 파쇄석과 야자매트로 돼 있어 휠체어 이동이 어려웠다.
여수시는 노면 상태 자체를 즉시 개선하는 대신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행사장 입구와 최대한 가까운 위치로 이설해 파쇄석·야자매트 등 이동이 어려운 구간을 최소한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내가 요청했다고 해서 반드시 바닥 전체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은 파쇄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 이용자가 불편 없이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노면 전체를 바꾸기 어렵다면 주차 위치를 옮겨 이동거리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다. 이런 답변은 좋다.
문제를 인정하고 현재 여건에서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이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이용자는 바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좋은 답변과 아쉬운 답변의 차이는 ‘대안’이었다
이번 민원 답변을 읽으며 내가 만족했던 답변과 아쉬웠던 답변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결국 대안이었다. 시설 구조상 어렵다. 안전 때문에 어렵다. 행사 중이라 바로 바꾸기 어렵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용할 수 있습니까?”
주차장의 바닥을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주차구역을 옮길 수 있다. 키오스크 이용이 어렵다면 통합 주문·결제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안내할 수 있다. 그런 대안은 지금 행사장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반면 화장실은 전면 교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도우미 지원이 대안이 되고, 테이블은 구조 변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접근하기 편한 테이블을 안내하는 데 그친다면 이용자가 처음 제기한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화장실에서는 혼자 물을 내릴 수 없고, 테이블에서는 일행과 함께 앉을 수 없다. 민원을 ‘수용’했다면 그 불편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까지 조금 더 고민했으면 한다.
이제 ‘수용’이라는 답변을 현장에서 보고 싶다
이번 민원의 처리상태는 ‘수용’이다. 그래서 이제는 답변서보다 현장이 궁금하다. 흔들리던 화장실 설비는 제대로 고정됐는지, 버튼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쉽게 찾을 수 있게 안내되고 있는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실제 행사장 가까이 옮겨졌는지.
식당의 통합 주문·결제대는 키오스크 이용이 어려운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가 달라졌는지. 그리고 아직 대안이 부족했던 화장실과 야외 테이블은 남은 행사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없는지.
민원 답변 한 장으로 끝났으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용’이라는 두 글자가 실제 현장의 변화로 이어졌으면 한다. 이번 민원을 통해 모든 시설이 한꺼번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현장에서 발견한 불편을 이야기하고, 그중 하나라도 실제로 바뀐다면 다음에 오는 사람의 여행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한국무장애관광연구센터가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개선을 요청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있는 시설을 실제로 쓸 수 있게 하고, 갈 수 있는 곳에서 머물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이번 답변에서 약속한 개선은 현장에서 꼭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쉬움이 남은 부분에는 한 번 더 이용자의 입장에서 질문해봤으면 한다.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가 아니라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는가?”
“가까이 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서부터 접근성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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