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1기는 지난 8월, 총 7개의 팀을 이루어 독일, 미국, 영국, 일본, 호주 연수를 각각 마쳤다. 이중 ‘BTS’ 팀은 ‘AI 시대, 수어와 음성언어의 공존전략’이라는 질문을 안고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로 향했다. 현지에서는 영국 수어(BSL)를 둘러싼 정책과 교육, 기술 분야에서의 농인 정보 접근성을 살펴보았다. ‘BTS’는 ‘Beyond the Sign’의 약자로, 수어를 출발점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 사회를 넘어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한 8박 10일간의 여정을 총 9편의 기고문에 담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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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청년드림팀 BTS 팀원들이 제니퍼 조지 교수님과 촬영한 단체사진.  ©BTS팀

8월 14일, 우리는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분은 20년 가까이 접근성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해 온 Jennifer George 교수였다. 이번 인터뷰의 주제는 장애학생 포용교육, 청각장애학생의 정보접근성, 그리고 대학이라는 공간을 지탱하는 평가와 설계의 문제였다.

Jennifer 교수가 접근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2005년, 영국에 웹 접근성 규정과 국제 가이드라인이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8년, 골드스미스에서 강사로 일하며 처음으로 농학생을 지도했던 경험이었다.

수어통역사를 구할 수 없었던 매주 30분의 지도시간, 교수와 학생은 Skype 텍스트 채팅으로 소통했고, 수업에는 필기 담당과 수어통역 담당, 두 명의 지원인력이 함께했다. 그 학생은 결국 최우등(First Class)으로 졸업해 사업가로 성공했고, 지금도 농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Jennifer 교수는 이후 다른 대학을 거쳐 2019년 골드스미스의 정규 교원으로 돌아와, 포용적인 교육환경을 만드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Jennifer 교수가 가장 강조한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장벽부터 없앨 수는 없을까?' 기존의 장애학생 지원은 진단과 신청, 그리고 개별 지원으로 이어지는 사후적인 구조였다.

골드스미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Universal Reasonable Adjustments라는 원칙을 세웠다. 모든 강의를 녹화하고,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며, 녹화본에는 보정된 자막과 다운로드 가능한 대본(transcript)을 붙인다. 수업자료는 최소 48시간 전에 공개하고, 모든 과목의 온라인 강의실(LMS)은 같은 구조로 통일했다.

이 통일된 구조는 다름 아닌 장애학생들의 익명 피드백을 반영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결과, 200명 정도의 수업에서 약 60명이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이렇게 보편적으로 제공된 조정 덕분에 개별적으로 필요했던 지원의 약 85퍼센트가 사라졌다고 했다. 남은 것은 정말 개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소수의 사례, 이를테면 시각장애학생의 이동지원이나 농학생을 위한 수어통역이었다.

청각장애학생 지원에 대해서는 난청학생과 농학생을 구분해 설명했다. 난청학생은 자막과 청각루프(Hearing Loop)만으로도 상당 부분 수업을 독립적으로 따라갈 수 있지만, 수어가 필요한 농학생에게는 별도의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청각루프 관리 방식이었다. 골드스미스는 AbilityNet이라는 외부 기관에 접근성 감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일부 청각루프가 낡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학교는 시스템을 전면 점검하고 유지보수 인증 체계를 마련했다. 접근성 장비는 설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외부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평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팀은 청각장애학생이 문해력의 어려움 때문에 필기 중심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Jennifer 교수는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개념으로 답했다. 교수자가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What am I assessing?)'라는 것.

컴퓨터공학 학생을 평가한다면 중요한 것은 영어 문장을 얼마나 세련되게 쓰는지가 아니라, 코드를 설계하고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는지다. 그래서 Jennifer 교수는 평가 문항에 'write'나 'speak' 대신 'communicate'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글, 영상, 웹사이트 등 학생이 스스로 방법을 선택하게 하고,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가로 좁힌다. 같은 학습목표를 평가하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선택권을 준다는 원칙이었다.

'한 사람의 장벽을 없애면 많은 사람의 장벽도 함께 없어진다.' Jennifer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발표를 하느니 차라리 낙제하겠다고 말했던 불안장애 학생의 사례를 소개하며, 교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컴퓨터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뛰어난 발표자여야 하는가?' 답이 아니라면, 발표라는 형식 자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녹화 영상으로 발표를 대체하고, 대본을 제출해 다른 사람이 대신 읽게 하는 등 단계적인 대안을 거쳐, 결국 학생 스스로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간다고 했다.

Jennifer 교수는 최근 AI가 채용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얼굴에 장애 특성이 있거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 문화적으로 다른 표정과 표현방식을 가진 사람이 AI 채용 시스템에서 불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교수는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AI can remove some barriers, but it can also introduce new disabilities.' AI는 장벽을 없앨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장벽과 배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접근성을 개별 지원이 아닌 설계의 문제로 바라보는 골드스미스 대학의 태도, 그리고 기술을 무조건적인 해답으로 보지 않는 신중함은 한국의 대학과 기관들이 접근성과 AI를 함께 고민할 때 곱십어볼 만한 지점이었다.

Jennifer 교수와의 대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평가하고, 누구를 기준으로 환경을 설계하고 있는가. 맨체스터에서 만난 MDC, 화면 너머로 만난 Signly, 그리고 골드스미스에서 만난 Jennifer 교수까지, 이번 연수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접근성은 누군가에게 베푸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애초에 모두를 위해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설계와 판단의 자리에 당사자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 8박 10일간 영국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이 질문을 이제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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