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시내 칼럼니스트】최근 뉴스를 통해 강원도 춘천의 한 떡집에서 남성이 떡 두 봉지를 훔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유는 배고픔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해 왔지만, 감염병 확산과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살던 방에서도 나와야 했고, 이후 여인숙과 폐건물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떡 두 봉지가 드러낸 복지 사각지대 (AI 이미지 생성). ©김시내
그는 일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었다. 끊긴 휴대전화를 들고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일자리 앱을 확인했고, 새벽마다 인력사무소를 찾아갔다. 일할 의지도 있었고, 실제로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노력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는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거리에서 생활하면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개인이 얼마나 애썼는지는 지워지고, 살아남지 못한 책임만 남는다. 편의점의 원플러스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버티던 그는 결국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떡에 손을 댔다.
떡 두 봉지를 훔친 행위가 잘한 일일 수는 없다.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위법행위가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러나 잘못을 판단하는 것과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다행히 경찰은 절도 행위만 보지 않았다. 그의 텅 빈 배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무너져 온 삶을 함께 살폈다. 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해 긴급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재활시설에도 입소할 수 있게 했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이었지만, 그를 범죄자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처벌해야 할 행위 뒤에서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가능성도 보았다. 제도가 놓친 사람을 누군가 다시 발견했고, 행정과 복지가 움직였으며, 지역사회가 그를 다시 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여러 기관이 연결되어 다시 살아갈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따뜻한 결말에 안도하면서도 하나의 질문은 남는다.
왜 그는 떡을 훔치고 경찰에 붙잡힌 뒤에야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 발견되었을까.
장애는 비교적 제도가 알아보기 쉬운 취약성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도 있고, 장애인으로 등록했다고 해서 필요한 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제도의 부족함과 까다로운 기준, 필요한 만큼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장애인으로 등록된 나는 적어도 국가가 인정한 지원 대상이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장애인연금을 받으며, 이동지원과 의료비 지원 등 여러 제도의 도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지원은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제약을 줄이고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제도의 이름 안에서 지원받는 나의 삶을 돌아보면, 아직 어떤 이름도 얻지 못한 채 홀로 버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적어도 배가 고파 본 적은 없다.
이 사실이 이번 사건 앞에서 나를 오래 멈춰 세웠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나와, 일자리를 잃고 살던 방에서 쫓겨나 굶주림에 내몰린 사람 가운데 누구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단순하게 가를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 나는 제도 안에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는 어떤 제도의 대상이라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 거리로 밀려났다.
우리 복지제도는 사람의 삶보다 먼저 자격을 확인한다. 장애인인지, 노인인지, 아동인지, 기초생활수급자인지, 소득과 재산이 기준에 맞는지, 부양해 줄 가족이 있는지를 묻는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려면 일정한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의 위기는 언제나 제도가 만들어 놓은 칸에 맞춰 찾아오지 않는다.
가족과 단절되었지만 서류상으로는 가족이 있는 사람,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지만 아직 지원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 사람, 주소와 휴대전화가 없어 정보를 얻거나 신청하기 어려운 사람, 아프지만 진단이나 등록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이고 눈에 띄는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지만, 당장 오늘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취약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보는 취약계층의 모습과 다를 뿐이다. 이미 제도 안에서 이름을 얻은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복지의 범위를 두고 취약한 사람끼리 경쟁할 것이 아니라, 제도의 시야를 넓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까지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왜 주민센터에 찾아가지 않았느냐”,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당장 끼니를 걱정하고 오늘 밤 머물 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에게 제도를 검색하고, 필요한 서류를 마련하고, 자신의 위기를 설명하며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휴대전화가 끊기고 일정한 주소조차 없다면 도움을 요청할 통로부터 막힌다. 지원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오히려 지원을 신청할 힘과 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청하지 않은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전에 그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제도를 몰랐던 것인지, 알고도 접근하지 못했던 것인지, 문을 두드렸지만 기준에 맞지 않아 돌아서야 했던 것인지 살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세심한 판단은 한 사람을 처벌의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경찰은 그의 사정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정복지센터와 재활시설을 연결했다. 그를 다시 사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에는 거창한 구호보다 한 사람의 상황을 지나치지 않는 시선과 기관 사이의 실제적인 연결이 필요했다. 사회가 한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다만 다음 사람의 삶까지 누군가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위기를 알아본 경찰관의 따뜻함은 귀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다음 사람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무언가를 훔쳐야만 발견될 수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안전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고가 난 뒤 펼치는 그물만으로는 사람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
복지는 정해진 자격에 맞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고 있는 삶을 제때 발견하는 일이어야 한다. 행정자료에 나타나는 소득과 재산뿐 아니라 주거 상실, 장기 실직, 통신 단절과 같은 위기의 징후를 지역사회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주민센터를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복지에서 벗어나 찾아올 수 없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체계도 필요하다.
떡 두 봉지는 한 끼의 허기를 보여주지만, 그 뒤에는 한 사람을 거리까지 밀어낸 오랜 시간이 놓여 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떡을 훔치는 장면만이 아니다. 그가 방을 잃고, 연락수단을 잃고, 일할 기회를 잃고, 마침내 먹을 것마저 잃어가는 동안 사회의 안전망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한 기준과 범주가 그들의 삶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경찰과 지역사회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늦게나마 한 사람을 다시 품었다. 이제 그 따뜻한 대응을 예외적인 미담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범죄자로 발견하기 전에 생활인으로 발견하는 사회, 구조를 요청할 힘마저 잃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누구도 떡을 훔치고 나서야 자신의 어려움을 증명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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