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한국에서 죽음 이라는 말을 꺼내면 먼저 공기가 무거워진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죽음을 말한다고 하면, “불안해하지 않을까”, “오히려 혼란만 주지 않을까” 같은 우려가 뒤따른다.
때문에,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많은 발달장애인들은 ‘죽음을 몰라도 되는 존재’처럼 비추어지고 있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문화는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전달되게 마련이다. 이같은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20여년 전 부터 죽음교육을 시작한 영국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영국은 2009년부터 Dying Matters 캠페인을 매년 5월 개최하는데, ‘죽음알림주간’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죽음, 사별, 임종돌봄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고, 죽음준비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캠페인의 시작은 런던에 있는 ‘크리스토퍼스 호스피스’ 인데 환자의 의학적 접근과 돌봄을 연결하는 현대 호스피스 모델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죽음을 의료 실패가 아닌, 돌봄의 문제로 재정의함으로서 생애말기 돌봄정책과 연결짓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영국에서는 일부 학교에서 죽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동 사별 지원기관인 Winston’s Wish에서 상실,사별에 대한 교육자료를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단계별로 기획하여 제공하고 있는데, 교사가 굳이 죽음교육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안전하게 수업할 수 있도록 촘촘히 설계된 교육패키지가 있는 것이다.
사별은 어느 학교에서든, 어느 학생에게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부재는 결국 교사 개인의 의지와 마음에 의존하게 만든다. 이는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부담스럽다. 영국이 학생들에게 죽음을 교육하는 방식은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나 자료를 통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함으로서 학생과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생성형AI로 제작한 영국의 어린이 죽음교육 현장. ©김영아
이제 시선을 한국의 장애인복지 현장으로 돌려보자. 영국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도 죽음교육을 만들자’ 는 1차원적 메시지가 아니다. 죽음이해와 인식을 당사자의 권리이자 일상생활의 문제로 확장하고 안착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권리로 인식하는 순간 죽음교육은 당사자의 정보접근권이자 의사표현권리로 연결된다. 죽음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받을 권리, 장례와 애도과정에 참여하거나 거절할 권리,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권리를 보장하는 접근이 된다. 영국이 ‘죽음 대화를 정상화’ 하자는 목적으로 ‘죽음알림주간’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첫 단추는, 교재나 교육과정 제작이 아닌 기관의 표준대응체계 마련이다. 학교, 평생교육기관, 장애인복지관, 센터, 거주시설, 지원주택 등 당사자가 속한 기관 내에서 ‘당사자에게 사별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엇을, 누가, 어떤 언어로, 어떤 순서로’ 전달할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사별상황의 전달방식, 당사자의 이해도에 따른 쉬운표현, 보완대체의사소통을 활용한 선택권 보장이 필요하며, 사별 후 당사자의 행동변화를 해석하고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침이 시급하다.
당사자와 밀도있게 대면하는 활동지원사, 주간활동 제공인력, 거주시설 코디네이터, 사례관리담당자의 경우 ‘사별을 설명하는 기본언어’ 와 ‘애도를 위한 기본행동’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죽음교육은 죽음을 배우고 이해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들이 상실을 겪었을 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받고 선택하고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영국이 보여주는 핵심은 죽음교육의 인프라가 탄탄할수록 현장은 반응하고 움직인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현장에서도 당사자의 사별 이후 긴급조치를 넘어, 사별 이전부터 작동하는 안전장치를 갖춰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죽음을 말할 수 있을 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