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017년 국회의원 시절 의원실 인턴에게 고성을 지르며 “대한민국 말 못 알아듣느냐”, “아이큐가 한 자리냐”,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등 모욕적·위협적 발언을 했다는 녹취가 공개됐다.
직장갑질119는 이를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며 임명 반대 입장을 냈고, 직권남용·협박 등 혐의로 고발이 이뤄졌다는 보도도 뒤따랐다.
저는 경남척수장애인협회 거창군지회에서 현장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단순히 “정치권의 또 다른 논란”으로 흘려보내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갑질은 언제나 ‘약한 자리’에 먼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턴은 가장 약한 노동자다. 계약도 짧고, 권한도 없고, 다음 경력의 문턱을 ‘평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쥐어 준다. 그러니 폭언과 모욕 앞에서 “그만두면 되지”라는 말은 너무 쉬운 처방이다. 그만두는 순간, 청년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미래의 발판을 잃는다.
척수장애인도 비슷한 구조 속에 놓인다. 우리는 종종 ‘도움을 받는’ 위치에 있다. 활동지원, 병원, 관공서, 이동 환경, 그리고 주변의 배려에 삶의 많은 부분이 연결돼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이 정도도 못 하냐”는 시선이 일상의 품격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장애인의 삶은 ‘의지’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환경과 관계, 서비스의 태도가 삶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갑질이 단지 직장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인권 감수성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믿는다.
더 아픈 대목은, 갑질이 종종 “성과” “효율” “조직 기강” 같은 말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명분이 그럴듯해도 약자를 몰아세우고 모욕하는 순간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폭력이다.
특히 공적 권한을 가진 자리라면 더 엄격해야 한다. 공직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한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갑질 근절”을 외치면서 가장 가까운 자리의 약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그 구호는 정책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의 문장으로 전락한다.
이 지점에서 거창의 지역사회에도 질문이 돌아온다. 우리는 청년에게 “사회생활이 원래 그래”라고 가르쳐 왔는가. 장애인에게 “원래 불편한 게 당연해”라고 말해 왔는가. 그 ‘원래’라는 단어가 사실은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관행은 아니었는가. 갑질을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면, 다음 피해자는 또 생긴다. 인턴이, 신입이, 비정규직이,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이 늘 먼저 맞는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치권이든 지역사회든, 기준은 분명하다. 약자에게 강한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적 권한을 가진 자리는 말보다 태도, 제도보다 실천으로 검증돼야 한다. 청년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공동체가 지속되고, 장애인이 존중받아야 지역이 품격을 갖는다.
우리는 ‘갑질’의 뉴스를 소비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 그 뉴스가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면, 거울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변명보다 수정이다. 약자에게 “참아라”가 아니라, 권력자에게 “멈춰라”라고 말하는 사회. 그 사회가 되어야, 거창도 한국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독자 김경진 님께서 보내 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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