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주거복지 분야에서 말하는 '비공식 주거(Informal Housing)'란 국가의 공식적인 주택 공급체계나 건축·주택 관련 법제도의 보호 밖에 존재하는 주거를 의미한다.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무허가 건축물, 컨테이너 주택, 장기투숙 여관, 일부 반지하 주택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공간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주거권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안전한 건축구조도, 안정적인 임대차 보호도, 적절한 생활환경도 확보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비공식 주거를 단순한 주택문제가 아니라 주거권과 시민권의 문제로 바라본다.
특히 장애인에게 비공식 주거는 더욱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 비장애인에게 불편한 공간은 장애인에게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뿐인 고시원은 휠체어 사용자에게 사실상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이 되고, 화재경보장치가 없는 쪽방은 청각장애인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 된다. 침수 위험이 높은 반지하는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에게 탈출할 수 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비공식 주거에 내몰린 장애인의 주거권 보장이 시급하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2022년 여름 서울의 반지하 침수 참사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누구는 계단을 뛰어올라 탈출할 수 있었지만 누구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침수된 반지하와 계단뿐인 고시원, 좁은 쪽방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 공간이었다.
그 사건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거의 문제였고, 더 나아가 시민권의 문제였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복지를 이야기할 때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인연금, 이동권, 보조공학기기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정책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장애인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주거는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63만 명을 넘어섰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전체 등록장애인의 55.3%가 65세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장애인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고령사회가 직면한 핵심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장애인은 여전히 주택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높은 의료비 부담, 불안정한 소득구조는 장애인을 값싼 주거로 내몬다. 그 결과 상당수 장애인은 반지하, 고시원, 쪽방, 노후 다세대주택, 무허가 건축물과 같은 비공식 주거에 머물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간이 단순히 낡고 좁다는 데 있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최소한의 접근성과 편의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휠체어 사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는 찾아보기 어렵고, 출입문 폭은 휠체어 통과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욕실에는 안전손잡이가 없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지판이나 음성안내 장치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경보장치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장애인에게는 이동권 침해이고, 안전권 침해이며, 생존권 침해이다.
특히 화재나 침수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그 위험성이 극대화된다. 비장애인에게도 위험한 공간이지만 장애인에게는 탈출 자체가 불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거는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사회와 연결되는 플랫폼이 되었다.
복지서비스 신청, 병원 예약, 금융거래, 비대면 진료, 원격교육, 온라인 사회참여는 모두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비공식 주거는 장애인을 디지털 사회로부터도 배제한다.
인터넷 환경은 불안정하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공간은 부족하며,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주거빈곤은 정보빈곤으로 이어지고, 정보빈곤은 사회참여의 제한으로 연결된다.
주거빈곤, 정보빈곤, 관계빈곤이 서로 얽히면서 장애인은 시민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결국 비공식 주거는 집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권의 문제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T. H. Marshall은 시민권을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의 총체로 설명했다. 오늘날 장애인의 주거권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시민권의 핵심 영역이다.
세계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많은 국가들은 비공식 주거를 도시의 흉물이나 불법 공간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는 철거였다. 그러나 사람을 내쫓는다고 빈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브라질 정부는 오랫동안 빈민가 철거 정책을 추진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1990년대부터 '파벨라-바이루(Favela-Bairro)' 사업을 통해 파벨라를 도시의 일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대신 도로와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전기와 공공시설을 공급하였다.
이는 단순한 도시개발사업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도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시민권 회복 정책이었다.
케냐의 키베라도 비슷하다. 정부와 국제사회는 비공식 정착촌을 철거하는 대신 토지권을 인정하고 상하수도와 전력을 공급하며 주민들이 직접 개선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핵심은 사람을 공간에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싱가포르는 고령자와 장애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국가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 주택에 경사로와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주거와 돌봄서비스를 결합한 커뮤니티 케어 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과 고령자를 시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브라질, 케냐, 싱가포르의 사례는 서로 다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철학을 갖고 있다. 사람을 공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사람에게 맞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장애인 주거정책의 목표를 공급량 중심에서 접근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주택을 공급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주택을 확보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
둘째, 비공식 주거 개선사업에 장애인 접근성 기준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경사로 설치, 욕실 개조, 시각·청각 경보장치 구축, 재난 대피체계 개선, 디지털 인프라 확충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셋째, 주거와 돌봄을 통합해야 한다. 집은 있지만 활동지원서비스가 없고, 돌봄은 있지만 이동이 불가능한 현실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 주거정책과 돌봄정책, 이동지원정책, 디지털 접근정책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