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정주 칼럼니스트】“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일터를 위하여···.” 간결하지만 강력한 이 문장은 오늘날 캐나다가 지향하는 장애인고용 정책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을 강조하는 다문화 국가 캐나다의 정신은 국가 정책과 기업 경영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구성원이 동등하게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그 중 캐나다를 대표하는 정책으로 ‘포괄적 근무환경(Inclusive Workplaces) 조성과 이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이자 재정기금 ‘EAF(Enabling Accessibility Fund)’가 있다.

캐나다의 국토 면적은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 인구는 3천800만 명이다. 세계 9위의 GDP규모를 가진 선진국이다. 장애인 출현율은 22.3%이고 장애인고용률은 59.9%이다. 장애인도 많고 장애인고용도 활발하다. 의무고용제 국가가 아님에도 캐나다 장애인고용률은 높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캐나다만의 독특한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포괄적 근무환경 조성과 EAF가 그 중심이 있다.

이 두 제도를 알아보기 전에 제정된 다양성,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법들이 있다. 1986년 ‘고용형평성법(Employment Equity Act)’은 장애인, 여성, 원주민, 소수 인종(이주민) 4대 마이너리티를 정의했다. 이들의 고용기회가 차별받지 않도록 공공 및 민간 부문에 강한 조치를 취해왔다.

동시에 ‘캐나다 인권법(Canadian Human Rights Act)’은 고용상의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고용형평성 보고서를 매년 제출하도록 공공기관에 의무화하고 있으며, 정량적 지표를 통해 포용 수준을 관리한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포용성을 단지 윤리적 의무가 아닌,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축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장애인고용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포괄적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제도는 장애인 당사자의 직장 적응을 위해 적합한 근무환경을 조성해주고, 관련 비용을 정부가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집행하는 전문기관이자 기금의 명칭을 EAF라고 한다.

포괄적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지원방법, 지원대상,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카테고리가 나누어지며 작업장의 규모와 프로젝트에 따라 최대 $100,000까지 지원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에는 장애인의 포괄적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1,500만 달러(한화 136억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시절에는 생산 근로 현장이 폐쇄되어 재택근무가 늘어났는데 이때 업무 지속가능성,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장애인근로자의 재택근무에도 포괄적 근무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온라인 직업트레이닝 기회를 확장하고 집에서 일하는 장애인과 관리자의 업무 관리 능력을 높이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기업의 장애인고용을 지원한다는 면에서 우리나라의 고용장려금 제도와 비슷한 것 같지만,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 근로자 당사자에게 필요한 근로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는 사뭇 다르다.

EAF는 장애인의 고용 접근성과 지역사회 참여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정부 기금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기금은 고용환경 개선, 지역사회 시설 접근성 향상, 디지털 정보 접근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재정적 뒷받침을 제공하고 있다.

Enabling Accessibility Fund(EAF)의 주요 지원 항목

지원 유형

주요 내용

최대 지원금

고용 접근성 개선

자동문높이조절 책상작업공간 개조점자안내 등

최대 100,000 CAD

(, 1억원 정도)

지역사회 접근성 개선

휠체어 경사로공공건물 자동출입문점자 표지판 등

최대 3,000,000 CAD

디지털 접근성 개선

웹사이트 접근성스크린리더 호환자막 삽입 지원

기업 규모별 차등 지원

 

이러한 제도는 실질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2024년 온타리오주 워털루 청소년센터는 EAF 지원을 받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점자 안내판을 설치하여, 포괄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 중소 IT기업은 장애인 직원 3명을 채용하면서 작업공간을 무장애로 개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은 ‘2024년 우수 고용환경 기업’으로 선정됐다.

2025년부터는 디지털 접근성 부문이 강화되어 웹사이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컨설팅과 구현 지원이 본격화됐다. 이는 장애인이 온라인 환경에서도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진전이었다.

한편 EAF는 매년 장애인을 비롯하여 4대 취약계층을 위해 포괄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한 사업주를 대상으로 ‘Canada's Best Diversity Employers‘ 선정해 시상하고 모범사례를 발표한다. 올해는 CN(Canadian National)철도, 캐나다 왕립은행(RBC,Royal Bank of Canada), Telus digital 등이 무의식적 편견 해소 교육, 포용적 언어 가이드라인 수립, 디지털 포용 전략 수립, 원격근무 시 장애 접근성을 보장했다고 인정 받아 올해의 상을 수상했다.

이 같이 의무고용제도을 시행하고 있지 않는 국가와 다르게 캐나다의 장애인고용은 다양한 사회의 객체들과 교류할 수 있다. 캐나다의 정책은 단순한 보조금 지급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문화 전환을 병행하는 정합적 전략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포용적 고용은 비용이 아닌 투자이며,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는 조직이 오히려 더 강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고용은 곧 권리’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은 필요하다.

캐나다가 추진하고 있는 포괄적 근무환경 조성과 EAF의 역할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가 아니다. 장애인을 위한 선언이 아닌 설계이며, 실천이다. 캐나다의 사례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장애인을 ‘도움의 대상’이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사회. 이것이 진정한 포용의 시작일 것이다. ‘장애인’에서 ‘장애 시민’으로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캐나다 장애인고용이 더욱 세련되어 보이고 앞서는 듯하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