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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의 다름알기] 물가 상승의 진실

  • 작성일: 중구나눔

[안승준의 다름알기] 물가 상승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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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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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기숙사에 살던 중고등학교 때엔 늘 배가 고팠다. 유난히도 이른 5시 30분 저녁 시간이 끝나고 나면 취침 시간까지 무언가의 간식은 필수였다. 떡볶이, 만두, 라면 같은 분식류가 대부분이었는데 용돈은 항상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면 용돈에 비해 나의 식욕이 너무 왕성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 앞 분식점의 음식 가격이 상당한 수준으로 착했다. 국그릇 가득 떡볶이와 튀김을 담아 주시고는 500원짜리 하나를 받곤 하셨다.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이 많은 나의 ‘어린 시절 물가가 그랬겠지’ 할 수 있겠으나 내가 그 정도로 나이 많은 사람은 아니고 학교 앞 아닌 다른 분식점의 떡볶이 1인분 가격은 그때도 3천 원 정도 했었다. 시장에 나가서 먹는 이런저런 꼬치 가격은 열 개에 3천 원 정도, 큰맘 먹고 용돈 모아서 먹던 치킨도 한 마리에 만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학교 앞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격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월급이라는 걸 받게 되었을 때 친구들과 오랜만에 학교 앞 분식점을 찾은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맛난 떡볶이 배 터지게 한 번 먹어보자! 사장님 이것저것 다 섞어서 가득가득 담아주세요.”

언젠가 받아들었던 그때 그 국그릇에 분식이 넘치도록 가득 담겨 나왔다. 엄청나게 더 먹을 것만 같았지만, 그 한 그릇이면 누구라도 한껏 배부르기에 충분했다.

‘마음먹고 돈 좀 쓰고 갈랬는데 오늘도 500원어치네.’하며 계산하는데 친구 서넛이 먹은 가격이 만 원을 훌쩍 넘어갔다. ‘계산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먹은 메뉴는 너무 단순했다. “졸업한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가격이 열 배가 오르나?” 하며 친구들과 잠시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 가격 또한 주변 다른 분식점의 가격에 비해서는 여전히 저렴한 편이었다.

큰맘 먹었을 때만 갈 수 있던 치킨집에도 들렀다.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덩치 큰 녀석들 서넛이 배부르게 단백질 충전하던 그곳에서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하며 또 한 마리를 시켰다. 이상했다. 몇 조각 집어 먹지 않았는데 접시가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의 식성이 그동안 늘었다고 하기엔 양이 너무 적었다. 한 마리를 더 시켜 먹고 나왔지만, 어릴 적 느꼈던 그런 포만감은 느낄 수 없었다.

추억 놀이의 마지막 장소로 들른 노래방에서마저 몇 년 만에 몇 배가 올라버린 가격을 지급하고 나서야 우리는 어렴풋이 오늘 사건의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간 가격만 지급하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서비스를 넣어주던 노래방 사장님이 우리를 반겨주는 마음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직장인 된 우리에게까지 그런 서비스를 줄 필요는 없었다.

치킨집 사장님도 몰래 시전하시던 만원의 무한 리필을 이제는 우리에게까지 행할 필요가 없으셨고 500원에 넘치도록 담아내시던 떡볶이 가격도 이젠 정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동네가 각박해진 것이 아니라 어린 날의 우리가 너무도 과분하게 나눔과 베풂 속에 살았다. 감사함이 무엇인지 나눔이 무엇인지 겨우 조금이나마 알아가려는 지금 그 어른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동네의 모습은 변해버렸다.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학교 앞 동네에서 500원짜리 떡볶이나 만 원짜리 치킨은 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때에도 그 가격은 정상이 아니었다. 감사한지도 모를 익숙한 감사들로 배고팠던 나의 저녁들은 배부름이 되었고 그 덕분에 공부하고 운동하고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다.

오늘을 사는 내가 존재하는 것도 나도 모르는 새 익숙해져 버린 나눔과 베풂이 있기 때문이다. 내 눈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출퇴근길을 함께 해 주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다. 길 가다 팔 내어주는 사람들도 메뉴판 읽어주는 가게 점원도 내겐 익숙한 당연함이지만 그들에게 그건 꼭 해야 하는 일도 언제까지나 베풀어야 하는 나눔도 아니다.

학교 앞 어른들의 감사한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지금 이 순간도 내게 존재하는 또 다른 학교 앞 어른들의 감사함을 놓치지 않도록 세심히 살펴야 한다. 그 어른들께 작은 하나도 갚을 길 없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500원 떡볶이와 만 원짜리 무한 리필 치킨을 나누는 어른이 되고 싶다.